신용회복경험담
빚더미 속에서도 농사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. 그리고 제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
-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.05.02 16:45
-
20
0
1. 도입부: 일상이었던 농사, 그저 땀 흘리며 살면 괜찮을 줄 알았죠
저는 경북 지역에서 벼농사와 소규모 채소 재배를 하는 50세 여성입니다.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있고, 도시에서 자립한 자녀 둘이 있습니다. 농촌 생활이라는 게 도시처럼 여유롭지도, 그렇다고 막막하지도 않은 — 꾸준히 일하면 버틸 수 있는 삶이었죠.
봄이면 모내기 준비하고, 여름이면 땀범벅으로 잡초 뽑고, 가을이면 수확에 바빠 숨 돌릴 틈이 없지만, 그게 제 삶이었고 감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. 단 하나, 돈이 갑자기 많이 필요해질 때를 제외하곤요.
2. 전개: 농사는 정직한데, 세상은 그리 정직하지 않더군요
몇 해 전, 친척을 통해 농산물 가공사업 투자 제안을 받았습니다. "보조금도 나오고, 수익 구조도 탄탄하다"는 말에 솔깃했고, 저축은행과 농협 대출을 통해 7천만 원 정도를 마련해 투자에 참여했습니다.
하지만 곧 사업은 흐지부지, 연락도 끊기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어요. 마침 그해 농사도 이상기후로 피해가 커서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,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습니다.
기존 대출에 이자만 내는 구조로 간신히 버티던 중, 생활비와 이자 갚으려고 대부업체 두 곳에서 추가로 돈을 빌리게 되면서, 총 채무는 약 9,200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.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구조에서 그 빚은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습니다.
3. 위기: “소출 없는 밭만큼, 희망도 메말라갔습니다”
하루는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일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. 이유도 없이요. 날은 덥고, 허리는 아프고, 은행에서 독촉 전화는 계속 오고, 아이들에겐 말도 못하고… 그날 이후 매일 아침이 버거웠습니다.
남편에게조차 내 상황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시간은 6개월이 넘었습니다. 결국 남편도 알게 되었고, 다행히 “네가 잘해보려고 했던 일이니까 우리 같이 해결하자”고 해줬어요.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, 진지하게 개인회생 제도를 알아보게 됐습니다.
처음 상담받으러 갈 땐 부끄러움이 컸습니다. ‘이 나이에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’, ‘내가 너무 어리석었나’ 싶은 마음에 고개도 들기 힘들었죠. 그래도 차근히 설명 듣고, 제 상황에 맞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희망이란 게 처음으로 보였습니다.
4. 해결: 개인회생 신청은 ‘실패’가 아니라 ‘선택’이었습니다
상담을 받고 서류를 준비해 법원에 제출하고, 인가까지 총 5개월 정도 걸렸습니다. 저는 정기적인 소득이 없다 보니 농업소득 내역서, 작황기록, 지역농협 거래내역 등 다양한 자료를 준비해야 했고, 그 과정이 꽤 버거웠어요.
그래도 법원에서는 제가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, 자산이 없으며, 상환 의지가 뚜렷하다는 점을 인정해주었습니다. 최종 인가된 변제계획은 월 22만 원씩 3년간 변제하는 것이었고, 나머지 금액은 법적 절차에 따라 탕감될 예정입니다.
법원 출석 당시, 판사님은 제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셨는데, 그 순간 그동안 스스로에게 지웠던 수치심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.
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 시선보다 자책감이었습니다. 하지만 남편이 항상 “네가 그런 선택 안 했어도, 우리는 힘들었을 거다. 문제는 판단이 아니라 결과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야”라고 해줘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.
5. 결말: 다시 뿌리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
지금은 개인회생을 시작한 지 7개월째입니다. 한 번도 연체 없이 변제금을 납부 중이고, 빚에 쫓기던 시절보다 마음이 훨씬 안정됐습니다. 농사일은 여전히 고되고 소득도 일정하진 않지만, 더는 불안에 떨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, 그게 가장 큽니다.
아이들에게는 여전히 “괜찮다”고만 했지만, 언젠가 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날도 오겠죠. 제 작은 바람은, 남편과 소박한 가공품 브랜드를 만들어보는 것입니다. 지역 직거래 장터에서 작게라도요.
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 중에, 농촌에서 빚을 지고도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습니다. 개인회생은 당신을 위한 제도입니다. 나이도, 직업도, 사는 곳도 중요하지 않아요.
중요한 건 지금 용기를 내는 것. 저처럼요.